도스토옙스키는 세상을 궁금해하는 젊은이들의 필독 저자들이었다.
청화백자 자체가 푸른색을 좋아하는 아랍인의 취향에 맞춰 수출용으로 개발한 것이었다.한데 우리는 몇몇 조선 도공의 이름을 알고 있다.
전위미술을 연상시킬 만큼 창의적 작품도 많다.그가 구한말 한양을 방문했을 때 조선과 일본의 문화 격차가 심각했던 모양이다.조선 도공들을 확보한 일본은 이들 덕분에 중국을 위협하는 자기 수출국으로 변모했고.
이후 광해군 때 일본에 파견된 이경직은 포로로 잡혀간 조선 도공들을 데려오려 했으나 그중 상당수가 이미 일본이 자리를 잡았기에 귀환을 거부했다고 『부상록』에 썼다.오늘날 사쓰마 도자기가 최고 명성을 누리게 된 것은 바로 이 도공들 덕분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새로 습득한 기반 위에서 무언가를 더 만들어 마침내 많은 영역에서 산업을 발전시킴으로써 오늘날 유명해진 반면.
(…) 주자학 이외의 학문은 발달하지 못하니 이 영향은 예술.조선의 도자기와 채색 백자는 이미 15세기에 유명했고.
청화백자 자체가 푸른색을 좋아하는 아랍인의 취향에 맞춰 수출용으로 개발한 것이었다.조선인들은 수백 년 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조선인은 한때 이웃 나라 국민보다 훨씬 앞섰다고 적시했다.이어지는 그의 일침은 뼈아프다.